하나님께서 질병이나 고통이 섭리라고 하니 할 말이 없지만 본인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 온 마음을 다해 올인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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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교수

초원AI 신학과 교수

깊이 있는 신학적 해설

시편 73:26

  •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질병과 고통 앞에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맡기기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섭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기보다 현재의 고통이 너무 실제적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문제의 핵심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면 고통을 아무 말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가’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성경은 섭리를 믿는 것과 고통을 호소하고 도움을 구하는 것을 서로 배치하지 않는다.

섭리는 고통을 설명하는 한 문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성경에서 섭리란 하나님이 세상을 보존하고 다스리며 자신의 뜻을 이루신다는 교리다. 그러나 이 교리는 개별 질병의 원인과 의미를 인간이 모두 해석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욥기는 의인의 고난을 단순히 개인의 죄나 믿음 부족으로 설명하는 태도를 비판하며, 고난의 원인을 성급히 단정하지 않게 한다 (욥기 1장, 욥기 2장, 욥기 42장 참조).

본문의 흐름을 보면 욥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계속 질문하고 항변하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시편의 탄식도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고통을 가져가는 기도다. 따라서 “하나님이 허락하셨으니 아무 감정도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은 성경의 기도 전통과 맞지 않는다 (시편 13편 참조).

전적인 헌신은 고통이 사라진 뒤에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전적인 헌신은 늘 강한 확신과 감정으로 하나님께 몰입하는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신앙은 때로 “믿습니다”와 “믿음이 부족하니 도와달라”가 함께 있는 상태이며, 하나님께 올인할 수 없다는 사실까지 하나님 앞에 말하는 정직함도 신앙의 한 형태다 (마가복음 9:24 참조).

여기서 섭리와 운명론을 구별해야 한다. 운명론은 인간의 기도와 선택과 치료가 아무 의미 없다고 보지만, 성경의 섭리는 하나님이 인간의 기도와 의학적 치료와 공동체의 돌봄을 포함한 수단을 통해 일하신다고 본다. 그러므로 치료를 받고, 몸의 한계를 조절하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하나님께 덜 헌신하는 행동이 아니다.

오늘의 신앙은 작은 충실함으로 나타난다

현재 상황에서 ‘온 마음을 다해 올인한다’는 표현을 즉시 실현하려 하기보다, 오늘 가능한 신앙의 단위를 작게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짧은 기도로 “하나님, 지금은 믿음보다 두려움이 큽니다”라고 말하고, 감당할 수 있는 분량의 말씀과 예배를 지속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또 질병의 치료와 회복을 위해 의료진의 도움을 받고, 신앙 공동체 안에서 실제적인 돌봄을 받는 것도 구체적인 순종이다.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약해지는 것과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받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신앙의 헌신은 한 번의 결단으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는 날에도 하나님께 다시 방향을 돌리는 반복 속에서 형성된다. 그러므로 지금은 자신의 한계를 숨기지 않고 하나님께 가져가며, 가능한 만큼의 충실함으로 다시 시작하면 된다 (로마서 8:38-39 참조).

하늘에 계신 하나님, 질병과 고통 속에서 마음이 쇠약할 때에도 주님만이 반석이시며 영원한 분깃이심을 믿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주님께 나아갈 힘이 없을 때에도 믿음을 붙들어 주시고, 원망보다 신뢰로, 두려움보다 평안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초원AI는 ChatGPT와 달리 존재하지 않는 성경 구절을 인위적으로 생성하지 않으며, 이단성 있는 해석이나 교리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목회자 검수위원회를 통해 신학적 검증을 완료했으며, 국내 주요 이단 데이터를 학습시켜 오류 응답에 대한 신학적 방화벽을 구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