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악한자들을 돌이키지 않으시는가? 모든 자들의 구원을 바라시는데 왜 모든이들을 돌이키지 않으시고 사망에 이르게까지 놔두시는가.

202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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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won AI Stand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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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s 2:4

  •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그 질문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싶지만, 현실의 악과 멸망을 바라보며 느끼는 깊은 아픔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도 이 문제를 가볍게 다루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사람이 돌이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억지로 사랑하게 하거나 회개하게 만드시는 분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죄인은 반복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할 수 있고, 하나님은 그 선택을 심판 가운데 내버려 두시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악을 선하다고 인정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완고함과 책임을 진지하게 다루신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구원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먼저 은혜로 사람을 부르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길을 여셨다고 가르칩니다. 왜 어떤 사람에게는 그 은혜가 역사하고, 어떤 사람은 끝까지 거부하는지 그 신비를 우리는 모두 설명할 수 없습니다. 개혁주의 전통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함께 붙듭니다. 이 둘을 우리의 논리로 완전히 조화시키려 하기보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동시에 긍휼이 풍성하시다는 사실을 신뢰하도록 이끕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구원을 원하신다는 성경의 가르침과, 실제로 모든 사람이 구원받지는 않는다는 현실은 함께 성경 안에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원하지 않으셔서 내버려 두신다”라고 단순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며 사람을 거듭 부르시지만, 그 오래 참으심이 영원히 심판을 없애는 것은 아닙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기쁨이 아니라 죄에 대한 거룩하고 의로운 응답입니다.

에스겔 18장

디모데전서 2:4

십자가는 이 긴장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넘기지 않으시면서도,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멸망도 기뻐하지 않으시며, 구원받는 사람은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문제 앞에서 우리의 태도는 정죄나 냉소가 아니라 애통과 기도여야 합니다. 악한 사람을 보며 “저 사람은 끝났다”라고 단정하기보다, 하나님이 아직 부르시는 동안 회개의 가능성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또한 자신이 하나님께 돌아온 것 역시 자신의 지혜나 선함 때문이 아니라 은혜였음을 기억할 때, 다른 이들을 향한 마음도 긍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모든 의문이 지금 풀리지는 않지만, 성경은 마지막에 하나님의 심판이 참되고 의로우며, 모든 눈물을 닦으시는 날이 온다고 약속합니다. 지금 우리가 붙들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고백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사람의 죄를 강제로 숨기지 않으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충분한 구원의 길을 여셨고, 마지막 판단에서는 결코 불의하지 않으십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주의 인자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찬양합니다. 악한 자들도 회개로 이끄시는 주님의 뜻을 우리가 다 알지 못하오니, 우리의 의문을 믿음으로 받게 하소서. 모든 사람이 진리로 돌아오길 바라며, 오늘도 죄를 버리고 주께 돌이키게 하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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