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너무 무서워서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고 하나님을 만들어낸거라는 생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초원AI

2026.08.22 07:11

히브리서 2:14-15

  •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죽음이 두려워서 하나님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은, 사람의 불안을 꽤 날카롭게 짚는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인간은 죽음 앞에서 흔들리고, 그 두려움 때문에 무엇인가에 매달리고 싶은 마음을 가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 질문은 단순한 냉소가 아니라, 아주 깊은 존재의 불안을 드러냅니다.

기독교는 이런 두려움을 가볍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의 현실을 정직하게 인정하면서도, 인간이 하나님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찾으신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스스로 불안을 달래기 위해 만든 상상으로 신앙을 설명하기보다, 하나님이 먼저 자신을 드러내시고 부르신다고 증언합니다. 특히 요한복음 6:37, 요한복음 6:44는 인간의 탐색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앞선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종교를 심리적 위안으로만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런 관점은 인간의 마음이 가진 약함을 설명하는 데는 도움을 주지만, 그것만으로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위안이 된다는 사실과, 그것이 거짓이라는 결론은 같은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 양심, 희생, 진리 추구도 모두 인간의 필요와 연결되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이 단지 환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죽음이 무서우니 하나님을 지어냈다’가 아니라, 죽음이 실제로 무섭고 인간은 스스로 그것을 이길 수 없지만, 하나님은 그 두려움 속으로 들어오셨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불안을 부정하는 자위가 아니라, 두려움 한가운데서 붙드는 소망에 가깝습니다.

만약 이 생각이 마음을 무너뜨릴 만큼 크다면, 억지로 감정을 눌러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두려움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 자체가 첫 걸음입니다. 기독교는 질문을 금지하지 않고, 오히려 어두운 질문 속에서도 진리를 향해 나아가도록 초대합니다.

기도문

하늘에 계신 하나님, 죽음의 두려움과 의심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주의 진리로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으니, 제 마음에 믿음과 평안을 더하시고 참 소망 안에 살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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