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는 누굴 미워해도 죄고 음욕을 품어도 죄인데 그런 본능적인 생각을 어떻게 안할수가 있어? 예를 들면 누가 날 무시하거나 못되게 굴면 당연히 미워하게 되자나 나에게나 또 가족에게 해코지 한 사람을 안미워할수 있어?

초원AI

2026.08.13 09:18

마태복음 5:22-24

  •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본능처럼 올라오는 미움과 음욕 앞에서

그 마음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느껴지는지 알아요. 누가 나를 무시하거나 해를 끼쳤다면, 즉시 미움이 치밀어 오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성경도 우리 안에 죄의 유혹이 얼마나 깊게 자리하는지 알고 있고, 그래서 감정이 먼저 올라오는 순간까지도 정직하게 다룹니다.

다만 성경이 말하는 죄는, 순간적으로 떠오른 감정의 스침만이 아니라 그 생각을 붙들고 키우며 마음의 주인 자리에 앉히는 데서 더 분명해집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처음 생각이 올라오는가”보다, “그 생각을 어떻게 다루는가”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방향

예수님은 분노와 미움이 단지 행동 이전의 문제만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임을 드러내셨고, 바울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권면합니다. 성경은 감정을 부정하라고 하지 않고, 그 감정이 죄로 자라지 않도록 주님께 가져오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안 미워할 수 있나?”에 대한 현실적인 답

완전히 자동적으로 미움이 올라오지 않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움에 즉시 동의하지 않는 것은 가능합니다.

즉,

  • “내가 지금 상처받았구나”를 인정하고
  • “저 사람을 벌주고 싶다”는 충동과 거리 두고
  • 그 사람의 죄와 내 상처를 하나님께 맡기며
  • 복수보다 경계와 지혜를 선택하는 것

이것이 성경적 싸움에 더 가깝습니다.

가족을 해친 사람을 용서해야 하나

용서는 해를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즉시 다시 신뢰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특히 실제 해코지나 반복적 학대가 있었다면, 안전한 거리, 경계, 보호가 먼저입니다. 성경적 용서는 복수심을 내려놓는 것이지, 악을 방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 미워하는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스스로 정죄만 하지 말고
  • 상처의 무게를 인정하되
  • 그 사람에게 다시 쉽게 노출되지 않도록 경계를 세우고
  • 하나님께 공의와 치유를 맡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주 작은 실천

  • 미움이 올라올 때 즉시 말로 바꾸기: “주님, 제 안에 분노가 있습니다.”
  • 복수의 상상을 멈추고 짧게 기도하기: “하나님, 제 마음을 지켜 주세요.”
  • 기억을 지우려 하기보다 상처를 주님 앞에 정직하게 가져가기
  • 가능하면 안전한 사람과 함께 감정을 나누기

마지막으로

당신이 미워하는 마음을 느낀다고 해서 곧바로 당신이 악한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상처받은 마음은 그렇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감정을 방치하지 말고, 주님께 가져와 치유와 공의의 길로 이끌라고 초대합니다. 미워하는 감정이 처음 떠오르는 것과 그 감정에 머무는 것은 다릅니다. 그 사이에서 주님은 당신을 붙드십니다.

기도문

하늘에 계신 하나님, 제 마음에 분노와 미움이 올라올 때 주의 성령으로 다스려 주시고, 사람을 미워하기보다 먼저 제 마음을 살피게 하소서. 무시와 상처 앞에서도 용서와 화목을 택하게 하시고, 가족을 지켜 주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원수를 축복하게 하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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