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부인한다라는 말을 자아를 버린다고 표현해도 될까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 가지려 했던 모든 것을 다 해로 여긴다 했는데 타락한 인간의 자아는 스스로 높아지려 계속해서 소유하려하고 소비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려 들잖아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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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w 16:24-26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자기를 부인한다’와 ‘자아를 버린다’의 차이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을 ‘자아를 버린다’고 표현할 수는 있지만, 그대로 같은 뜻으로 사용하면 오해가 생깁니다. 성경에서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인격과 개성, 감정과 책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자신을 중심에 두려는 타락한 자기주권을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주로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도와 관련하여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마태복음 16:24). 여기서 ‘자기’는 하나님을 거슬러 자신의 뜻과 영광을 최종 기준으로 삼으려는 사람 전체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나는 아무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욕망과 성공과 소유가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소유와 소비에 대한 분별
빌립보서 3장에서 바울은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여겼던 종교적 자랑과 지위를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비교하여 해로 여겼습니다(빌립보서 3:7-8). 이 고백은 모든 물질이나 성취를 본질적으로 악하다고 선언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의지하여 자신을 높이고 의롭게 보이려는 태도를 버린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소유 자체보다 다음과 같은 방향에 있습니다.
- 소유를 통해 자신의 가치와 정체성을 증명하려는 것
- 소비를 통해 타인의 인정과 우월감을 얻으려는 것
- 필요가 아니라 욕망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그것을 자유라고 여기는 것
-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기보다 자신을 위한 축적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 것
성경은 물질을 무조건 거부하기보다, 물질을 사랑하고 그것에 소망을 두는 태도를 경고합니다(마태복음 6:19-21; 디모데전서 6:17-19). 물질은 선하게 사용될 수 있지만, 인간의 마음에서는 쉽게 하나님을 대신하는 주인이 됩니다.
자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바꾸는 것
타락한 자아는 스스로 높아지고 소유하며 소비함으로써 자신을 완성하려 합니다. 복음은 그 자아를 단순히 파괴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받고 자기중심성에서 하나님 중심성으로 돌이키라고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도 기뻐하고 창조하며 일하고 소유할 수 있지만, 더 이상 그것들을 자신을 구원하거나 높이는 수단으로 삼지 않습니다.
오늘의 적용은 소비를 모두 끊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구매와 성취의 순간마다 ‘이것이 정말 필요한가’뿐 아니라 ‘나는 이것으로 무엇을 증명하려 하는가’를 살피고, 가진 것을 감사와 나눔과 섬김을 위해 사용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자아를 버리는 금욕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욕망이 바른 질서를 찾는 자기 부인이 됩니다.
정리하면,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아와 인격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높이고 소유하려는 타락한 자기중심성을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타락한 자아를 내려놓고 제 욕심과 자기만족을 부인하게 하소서. 주님의 십자가를 지며 세상의 소유보다 주님을 더 귀히 여기고, 제 목숨과 유익보다 주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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