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혹은 학자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할 생각도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그런 위치로 사람들 앞에 서기에는 믿음도 약하고 모범을 보일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아

초원AI

2026.08.13 11:38

고린도전서 1:26-29

  •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게 느끼는 마음은 아주 이해됩니다. 사람들 앞에 서는 자리일수록, ‘내가 과연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먼저 올라오곤 합니다. 하지만 신앙의 길은 이미 완전한 사람이 선택받는 길이라기보다, 연약함 속에서도 하나님께 붙들리는 사람이 걸어가는 길에 가깝습니다.

기독교적으로 보면, 목회와 신학은 스스로의 강함을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말씀 앞에서 계속 배우고 회개하고 자라는 자리입니다. 바울도 자신의 약함을 숨기지 않았고, 오히려 그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난다고 고백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격이 충분한 사람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부르신 사람을 통해 빚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모범이 될 만큼 완벽한가’가 아니라, 나는 진실하게 배우려 하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가입니다. 목회자나 학자는 완성된 성자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계속 빚어지는 제자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약하다고 느끼는 지금의 마음이 오히려 오만이 아니라 겸손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이런 점을 잘 분별하면 좋습니다.

  • 소명은 감정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말씀, 공동체의 확인, 지속적인 열매를 함께 봅니다.
  • 불안과 소명은 다를 수 있습니다. 불안은 ‘내가 부족하다’는 감각이고, 소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는 방향성입니다.
  • 지금 당장 사람들 앞에 서는 자리보다, 먼저 학습, 경건, 섬김의 기본기를 쌓는 것이 더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생각을 ‘나는 안 된다’로 결론 내리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더 배우고 정직해지고 싶은 사람인가로 다시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신학 공부는 그런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약함이 곧 탈락 사유는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문

하늘에 계신 하나님, 제 약함과 부족함을 아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으로 저를 세워 주시고, 사람 앞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배우게 하소서. 제 안의 두려움보다 주님의 지혜와 은혜가 크심을 믿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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