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열왕기하 9:27-29
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정원의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그 뒤를 쫓아가며 이르되 그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그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그의 신복들이 그를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윗 성에서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아합의 아들 요람의 제십일년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었더라
열왕기하 > 9장 > 27-29절
열왕기하 9:27-29 개역개정
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정원의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그 뒤를 쫓아가며 이르되 그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그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그의 신복들이 그를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윗 성에서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아합의 아들 요람의 제십일년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었더라
열왕기하 9:27-29 해설
27이 구절은 왕국 분열 시기에 일어난 사건을 묘사합니다. 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북이스라엘의 새로운 왕 예후로부터 도망치려다 결국 죽임을 당하는 장면입니다. 이블르암(지즈르엘) 근처에서 예후의 병거에게 쫓겨 혼란 속에서 도망치던 아하시야는 므깃도(메기도)까지 도망쳤으나 끝내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과 계획 안에 있었던 일이며, 악한 통치를 끝내고 정의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 섭리의 일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28이 구절은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가 죽은 후 그의 신복들이 그의 시신을 예루살렘으로 운구해 다윗 성에 있는 그의 조상들의 묘실에 안장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이는 아하시야가 비록 악한 왕으로 평가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자손으로서 조상의 묘실에 장사됨으로써 왕족의 존엄성을 유지한 사건을 나타냅니다. 예루살렘과 다윗 성(성)은 유대 민족 역사와 문화에서 중심적인 장소로 여겨지며, 이러한 안장 행위는 전통과 연결된 중요한 의식을 강조합니다.
29이 구절은 아하시야가 유다의 왕이 된 시점에 대해 설명하며, 그 시기를 북이스라엘의 왕 요람의 통치 기간과 연관 짓고 있습니다. 아합 왕조는 북이스라엘(현대 이스라엘)에서 악한 통치를 했던 가문으로, 요람은 그 일원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아하시야가 유다(현대 남유럽 일부)에 즉위한 시점을 명확히 함으로써 성경 기록의 역사적 연대를 밝히고 있으며,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사이의 정치적 연결성을 보여줍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어떻게 두 나라를 통해 진행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열왕기하 9장 해설
이스라엘 왕과 아합의 집안을 심판한 예후
열왕기하 9:27-29 관련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