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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기3분 소요

죽음도 정복하는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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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찬 목사

오늘의 인도자

묵상하기
묵상 나눔 208

오늘의 성경

누가복음 7:13-15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성경 해설

가버나움에서 백부장의 신하를 고쳐주시는 기적을 보여주신 예수님! 제자들과 많은 무리와 함께 ‘기쁨’이라는 뜻을 가진 나인 성으로 이동하십니다. 그런데, 막상 예수님께서 그곳에 도착하셨을 때, 그곳에는 사람들의 슬픔이 가득했습니다. 젊은 남자 청년 한 사람이 관에 묻힌채 성전에서 나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죽은 청년이 과부의 하나 뿐인 아들이었다는 것이죠.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애통한 마음과 모두의 눈물이 가득한 절망적인 상황! 그것을 보신 예수님은 어떻게 행동하셨을까요?

메시지

율법에 따르면 죽음에 관계된 것은 부정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시체에 가까이 가거나 만지는 행동을 절대 하지 않았죠.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죽은 청년이 묻힌 관에 다가가십니다. 그리고, 직접 관에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분명히 죽어있던 청년이 일어나서 앉아 말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죽은 청년을 살리시고, 절망 밖에 남지 않은 어머니에게 다시 소망을 주신 예수님!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왜 예수님께서 직접 관에 손을 대셨을까요? 모두가 예수님의 행동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율법에 어긋난 예수님의 행동은 유대인들의 비판을 피할 수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굳이 예수님께서 관에 손을 대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께는 율법에서 말하는 부정보다 그 사람을 향한 사랑과 연민이 우선이었기 때문입니다. 죽어버린 청년을 살리는 것이, 소망이 끊어진 과부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예수님의 가장 최우선의 가치였기 때문에 예수님은 기꺼이 관에 손을 대시는 것이죠. 문제가 해결 된 상황! 결국 이것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고백되어지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게 됩니다. 결국 슬픔이 가득한 나인 성에 기쁨이 가득하게 되는 것으로 성경 이야기가 끝나게 되는 것이죠.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뛰어나서, 내가 잘나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고백과 예수님을 향한 찬양이 고백되어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두려움인 죽음까지 정복하고 이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바라기는 은혜를 경험한 저와 여러분들의 입술에서 오늘 성경의 이야기처럼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고백과 예수님을 향한 찬양이 고백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적용하기

은혜를 받은 우리의 입술에서 무엇이 고백되고 있나요?

기도문

모든 찬송과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자격 없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나인 성에 가득한 절망을 소망으로, 아픔을 기쁨으로 바꾸신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동일한 은혜를,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충만한 기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입술에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고백과 예수님을 향한 찬양이 고백되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