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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기6분 소요

예수님을 바로 알 때 나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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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호 목사

오늘의 인도자

묵상하기
묵상 나눔 176

오늘의 성경

누가복음 5:18-20>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성경 해설

게네사렛 호수 근처에 있는 어떤 동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처럼 모여든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집 밖에 저 멀리서부터 한 무리가 사람을 메어 데리고 옵니다. 한 중풍병자를 침상에 눕혀 데리고 오는 것이죠. 예수님으로부터 치료를 받고자 메어옵니다. 그들이 막상 와보니 몰려든 인파로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고민한 끝에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걷어내고 그 사이로 중풍병자를 침상째로 내려보냅니다.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흙과 먼지가 날리고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죄가 용서받았다.” 여러분, 당시 유대인들은 병에 걸린 이유가 죄를 지어서 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제자들이 날 때부터 소경이 된 사람을 보고 예수님께 이 사람이 누구의 죄 때문에 이런 일을 겪게 된 것인지를 물어봅니다. 부모의 죄 때문에 그렇게 시각장애가 된 것인지 아니면 자기의 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를 물어봅니다. 사람들은 장애를 겪거나 아픈 것이 죄에 대한 벌로 생각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도 그가 죄로 인해 중풍을 앓게 된 것으로 생각하셨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외적인 병이 아니라 영혼에 관심을 두고 셨습니다. 그의 영혼이 상하고, 아프고, 병들고, 부패 되었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그것을 치유하고자 다가가셨습니다. 아마도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뒤에서 죄인이라고 수군거리는 이야기, 손가락짓을 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또한 자신을 회복할 수 없는 자로 여겼을 것입니다. 삶이 망가지고 소망이 끊어졌겠죠. 자신을 조성하신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마저 끊어져 있지 않았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 바로 영혼의 회복을 명하십니다. “얘야, 안심하거라! 네 죄가 용서받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중풍병자의 기적을 보았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바로 보지 못했습니다. 이 회복의 역사를 바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능통했지만 핵심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영혼에 대한 깊은 관심이 아니라 전통과 문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에만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고수하기 위해 이기적이고 고집스러웠습니다. 한 영혼이 살아나는 기적적인 순간에 그들은 다른 생각을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하는구나.’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보시고는 정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이제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인자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는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자 그가 벌떡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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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여러분, 오늘 이 성경이야기를 통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는 오늘 이야기를 통해 나는 과연 예수님을 바르게 보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 듭니다. 예수님은 죄를 사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흠 없는 사람을 만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만나려고 오셨습니다. 회복시키고 살리시고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이 변화되어 자신이 주시는 값없는 은혜에 누리고, 표현하고, 나누기를 바라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 자신의 생각과 관점에 빠져 우리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역에 대한 열정이 꼭 신앙과 비례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헌신이 당연히 신앙의 표현이고 결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연약해서 영혼은 어두워지고 메말라 가는데 사역에만 열심을 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사역에 대한 헌신이 믿음의 보증수표가 되어 어느 누구보다 하나님과 가장 가깝다고 여길 때가 있습니다. 지금 큐티를 하고 있는 우리가 그런 오류에 더 빠질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예수님께서 먼저 찾아와 부르셨고 만나주셨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하늘의 능력을 구하며 회복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기에 가능했던 것 아닌가요? 우리 모두 긍휼과 용서가 필요한 죄인임을 겸손히 인정합시다. 예수님이 필요하고 매일 그 은혜의 손길을 구하는 복음의 빚진 자 되기를 간절히 간구합시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런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은 누구일까?’ 성경에서는 누구라고 정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거룩한 상상을 해보면 그들이 어쩌면 중풍병자처럼 전에 몸과 마음이 아팠던 자들이 않았을까요?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 참 기쁨과 회복을 경험하고서 이것을 자신들만 누릴 수 없어 지붕까지 뜯어 중풍병자를 예수님께로 내렸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살리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 또 다른 이들을 부르시고 살리시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십니다. 그 기적의 물결에 저와 여러분이 동참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하기

복음의 빚진 자로서 겸손히 예수님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기도문

하나님, 사역과 열정에만 빠져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어리석음이 없게 하옵소서. 죄인을 살리시고자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그 죄인이 바로 나임을 바로 알게 하옵소서.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하옵소서. 주님의 은혜로 겸손히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