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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기・4분 소요
민동선 목사
오늘의 인도자
데살로니가전서 4:14 (NKRV)
오늘 말씀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문제였던, 죽은 성도에 대한 앞날에 관해서 설명해줍니다. 그리고 '홀연히 임할 주의 날'을 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한계 앞에서 끈임 없이 무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부활 소망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예수님의 강림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해갈되지 않는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 이후에 앞날에 관한 궁금증이었습니다. 혹여나 예수님께서 강림하시기 전에 죽게 되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잠시밖에 머물지 못해서 그들에게 ‘부활’에 관해 충분히 이야기해주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관해서, 오늘 말씀에서 아주 명쾌한 대답을 줍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음 가운데 건져내어 살게 하셨던 것처럼, 성도들 역시 살리셔서 부활의 첫 열매로 재림하실 예수님과 함께 나타나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살아 있는 성도들보다 죽은 성도들이 먼저 일어나 주님을 뵐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하늘로 올리어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실 것이고, 그렇게 부활한 자와 살아 있는 자 모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처럼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고, 공중에서 땅으로 내려올 때 예루살렘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라 말합니다. 죽음이 가져다주는 슬픔은 말로 할 수 없지만, 그 눈물을 멈추게 하실 만큼 우리의 소망과 하나님의 약속 또한 분명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부활에 대해 알기 전에는 죽음에 대해 늘 불안해하며 두려워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도 ‘욜로(YOLO)’라는 단어와 같이, 이번 삶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가자는 마음으로, 세상에서의 부귀영화에 대해 집착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한 죽음을 향해 한계를 짓고 나아가는 이들과는 달리, 부활의 참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성도들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부활을 알기 전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다름없이, 끈임 없이 지금의 삶에 집착하며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의 날은, '갑자기' 그러나 '반드시' 이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날에 대한 추상적인 지식과 추측이 아니라, 그날을 확실히 대비하는 삶입니다.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며 취해 있는 자들이 아니라,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언제든 떠나갈 준비로 깨어 근신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서 우리가 이러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영적인 무방비 상태로 아무런 준비 없이 주의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1. 영원한 죽음이 아닌, 부활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나요? 2. 오늘이 마지막인 듯, 언제든지 떠나갈 준비로 깨어 근신하며 살고 있나요?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부활의 소망을 품고 깨어 근신하며, 두려움보다 설렘과 기대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