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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기5분 소요

누가 모호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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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선 목사

오늘의 인도자

묵상하기
묵상 나눔 92

오늘의 성경

요나 4:3-4>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성경 해설

오늘 본문 말씀의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 있습니다. 니느웨로 가서 사람들을 회개시키라고 하는 거였습니다. 이 니느웨라고 하는 도시는, 그때 당시 가장 큰 제국인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거기 가기 싫었습니다. 가기 싫었던 이유는, 요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니느웨에 가서 사람들을 회개시키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살려주시니까, 이 니느웨와 앗수르 사람들을 살려주신다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앗수르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압제하던 대제국이었습니다. 요나가 살던 시대는 앗수르의 억압과 통치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던 시대였습니다. 왜냐하면, 앗수르 안에 내분으로 민란들이 일어나서, 이 민란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앗수르 왕이 주변에 있는 국가에까지 시시콜콜 참견하면서 간섭할 세가 없었던겁니다. 이렇게 요나가 살고 있었던 ‘여로보암 2세’ 시대는, 그야말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황금기를 누리던 시간이 시대였습니다. 이 상태로 앗수르가 멸망해 버린다면, 이것만큼 좋은 일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요나에게 우리를 압제하는 적국인 앗수르의 수도에 가서 하나님의 멸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그들을 회개시키라라고 말하고 있으니, 요나가 가고 싶었을까요? 그 놈들 회개 안 하고 그냥 죽는 것이 유다와 이스라엘에게는 가장 최고 시나리오였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니느웨로 가려면 육로를 따라서 북동쪽으로 가야 하는데, 요나는 정반대인 서쪽으로 가서 항구에 도착해 배를 타고 더 서쪽 ‘다시스’로 향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풍랑을 사용하셔서 다시스로 가는 요나의 배를 멈춰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다시피, 결국 요나는 니느웨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니느웨에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을 때, 정말 하나님께서 의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요나의 예언과 선포를 듣고 다들 재를 뒤집어 쓰고 금식하면서 기도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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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오늘 말씀을 읽은 우리들은 요나와 같은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왜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압제하고 못살게 구는 적국을 살려주려고 하시는거지? 그리고 분명히 벌을 받게 하신다고 하셨으면, 말씀하신 대로 그 약속을 지키셔야하는거 아닌가? 게다가 이건 율법적으로도 맞지 않는 일이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이라면서 왜 이렇게 이랬다 저랬다 기준도 없이 변덕을 부리시는거야!' 맞습니다. 이 이야기를 '요나의 시선'에서 살펴보면,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자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시는 하나님의 태도에 대해서 의문이 생길 수 도 있습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권선징악'이 바로 기독교스로운 결말이고 해피엔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그렇게 행동할 만한 분명한 명분이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실제로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갇히는 벌을 받았지만, 하나님께 간절한 회개의 기도를 드렸고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의 시선'에서 이 말씀을 다시 살펴봅시다. 하나님께 용서를 받은 요나는, 니느워를 향해서는 '내로남불'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겁니다. 자신은 용서받았지만, 남은 그럴수 없다는 태도. 그러면서 이를 향해 상식과 율법을 내세우려했던 이기심. 사실 하나님이 모호했던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하지만 정작 남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내세웠던 요나 스스로의 태도가 모호했던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역시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불만을 이야기하는 나의 마음은 정작 어떠했나? 나의 생각과 계산 안에 하나님을 가두어 두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적용하기

내가 정한 기준이 하나님과 나 사이를 멀게 만들었던 경험이 있나요?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원합니다. 내 계산과 내 상식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으로 이 땅과 사람들을 바라보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