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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기・4분 소요
곽태호 목사
오늘의 인도자
요한1서 3:16 (NKRV)
오늘은 광복절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수많은 선조들이, 특히 믿음의 사람들이 바른 진리를 향해 분투하며 땀과 피를 흘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일서도 주의 자녀들에게 진리 위에 서라고 격려합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대적들을 경계하고 대적하며 주 안에서 거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죄를 이기신 주님을 따라 날마다 죄와 싸우며 삶을 지켜내 이들은 마지막 날에 예수님처럼 부활하여 주님을 뵐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한 다음 구체적으로 진리 위에 서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줍니다. 진리의 실천은 바로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지으시고 돌보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서 직접 보여주셨기에 주님의 제자인 우리에게 당연히 사랑의 삶을 살도록 요청되는 것이죠. 그런데 세상은 우리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세상의 악은 사랑과 의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사랑으로 하나 되어 믿음으로 전진하면 세상은 불편해합니다. 조롱하거나 비난합니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게 됩니다. 그럼에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의를 증거하고 드러내야 합니다. 여기에 있어 사도 요한이 급진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한일서 3:15)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라고 합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거하지 않으신다고 강하게 말합니다. 우리 안에 미움이 있다면 우리가 누군가를 죽이는 것입니다. 무서운 이야기가 아닌가요? 그런데 사실 우리의 마음속에 늘 사랑이 있지 않습니다. 늘 사랑이 충만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판단하고 정죄하고 미워합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작아집니다. 우리의 힘, 양심, 지혜와 노력, 그리고 우리의 인격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에 초점을 주면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의지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 앞에 전제로 붙으면 가능합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 말씀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위 말씀에서 뭐라고 합니까?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맞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신 것이 전제가 되면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힘입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몸 버려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구하셨습니다. 미약한 우리에게 대속의 사랑과 은혜가 베푸셨는데 그 은혜가 큰데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님들, 그렇게 사랑은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큰 사랑을 기억할 때, 우리가 그 사랑 안에 거할 때, 우리를 통해서 아버지의 사랑이 흘러갑니다. 요즘 마음의 밭이 딱딱하여 배려와 격려, 이해와 친절을 베푸는 것이 힘이 드십니까? 사랑하기가 버거우신가요? 십자가로 돌아갑시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우리 안에 충만할 때 다시 사랑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 받은 자이며. 은혜 입은 자입니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아버지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형제와 자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하루 내가 사랑하고자 힘써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어떤 사랑의 실천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결단합시다.
오 주님,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하여 주시고 당신의 자녀 삼아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사랑하기가 참으로 힘이 듭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사랑에 힘입어 사랑하고자 원합니다. 성령님 간구하오니 일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